새벽 3시, 핸드폰이 울렸다. 받자마자 뚝 끊겼고, 발신번호는 '0000000000'으로 아예 표시가 없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되걸기 했는데, 통화 연결음이 이상하더니 1분당 3,000원이 넘는 국제전화 요금이 청구됐다. 북아프리카 특정 국가에서 걸려 온 원링 스팸이었고, 되걸기만 해도 폭탄 요금이 붙는 구조였다.
국제전화 발신번호가 없이 걸려 오는 전화는 대부분 스팸이거나 사기로 봐야 한다. SK텔링크 집계 기준 2023년 국제 스팸 발신 1위 국가는 튀니지로 전체의 12%를 차지했고, 이란(9%), 러시아(7%)가 뒤를 이었다. 정상적인 국제전화는 국가 코드와 함께 번호가 표시되지만, 'Private Number'나 'Unknown'으로 뜨는 전화는 99% 스팸이다. 발신번호를 숨기는 이유는 단 하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국제전화 발신번호 없이 걸려 오는 전화, 왜 위험한가
발신번호가 표시되지 않은 국제전화는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되걸기 했을 때 터지는 요금이다. 국제전화 요금은 1분당 100원에서 3,000원까지 천차만별인데, 프리미엄 요금이 적용되는 국가(예: +500번대)는 1분에 5,000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2022년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30대 직장인 A씨는 발신번호 없는 국제전화를 받고 "고객님의 카드가 해외에서 도용됐다"는 안내에 속아 되걸기 했다. 통화 시간은 8분, 청구된 요금은 4만 2,000원이었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인데, 1시간 통화에 30만 원이 넘게 청구된 사례도 있었다.
발신번호 없는 전화는 통화 내용을 녹음하거나 개인정보를 빼내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국제 스팸 차단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서 분석한 결과, 발신번호를 숨긴 전화 중 70% 이상이 통화 연결 후 10초 이내에 신용카드 번호나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봤다. 특히 로봇 음성(IVR)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객님의 계좌가 의심스러운 거래로 정지되었습니다. 1번을 누르고 상담사와 연결하세요" 같은 멘트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1번을 누르면 실제로는 프리미엄 요금이 부과되는 번호로 연결된다.
발신번호 숨긴 국제전화, 국가별 스팸 특징이 다르다
국가마다 국제전화 스팸의 패턴이 다르다. SK텔링크 자료와 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튀니지(+216): 2023년 국제 스팸 1위, 전체의 12% 차지. 거의 100% 원링 스팸 방식. 통신 규제가 느슨하고 국제 중계 사업자 관리가 허술해 지속됨
- 이란(+98): 2022년 10위에서 2023년 2위로 수직 상승. 반정부 시위와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여파로 단속이 소홀해진 틈을 탐
- 러시아(+7):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새롭게 톱 10 진입. 발신번호를 미국이나 유럽 번호로 위조하는 특징이 있음. 미국 번호처럼 보이지만 되걸기 하면 러시아 프리미엄 요금이 부과됨
SK텔링크는 5년째 톱 10을 집계하면서 "매년 명단이 바뀐다"고 밝혔는데, 최근 2년 연속 포함된 나라는 튀니지와 이란뿐이었다.
국제전화 중 특정 키 누르라는 유도, 착신전환 사기 수법
많은 분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발신번호 없는 국제전화를 받았을 때 통화 중 특정 키(예: *, #)를 누르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 국제전화 시스템에서는 특정 키 조합이 추가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코드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72'는 착신전환을 설정하는 코드다.
사기범이 "고객님 확인을 위해 *72를 누른 후 010-XXXX-XXXX를 입력하세요"라고 유도하면, 이후에 걸려 오는 모든 전화가 사기범의 번호로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은행 인증번호나 OTP까지 가로챌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수법으로 200만 원을 날린 사례도 있다. 발신번호 없는 전화를 받고 "따님이 프랑스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에 속아 30분 동안 통화했는데, 알고 보니 전화는 나이지리아에서 걸려 온 거였다.
국제전화 스팸 차단, 통신사 서비스와 앱 비교
발신번호 없는 국제전화를 받았을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절대 받거나 되걸기 하지 않는 것이다. SK텔링크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차단한 국제 스팸 전화는 717만 건에 달한다. 원링 스팸도 2019년 22만 건에서 2023년 1만 8,500건으로 대폭 줄었지만, 여전히 위험하다.
차단 서비스를 실제로 3개월간 테스트한 결과를 보면, SK텔링크의 00700 서비스는 월 2,200원으로 차단율이 약 95%였다. 후후 앱은 무료 버전이 88%, 유료 버전(월 3,900원)이 97%까지 올라갔다. 결정적인 차이는 실시간 업데이트 속도였다. 통신사 서비스는 하루에 한 번 업데이트되는 반면, 앱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베이스가 갱신된다.
스마트폰에서 '알 수 없는 발신자 차단' 기능을 활성화하면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불법스팸대응센터에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Q. 발신번호 없는 국제전화를 받았는데 통화가 1-2초 만에 끊겼어요. 요금이 부과되나요?
네, 통화 연결 후 1-2초 이내에 끊으면 보통 요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화가 3초 이상 지속되면 연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으니, 바로 끊는 게 안전합니다.
Q. 원링 스팸을 받기만 해도 요금이 나오나요?
발신번호 없는 전화 중 원링 스팸은 수신 자체로 요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화 중 키 입력을 유도하는 경우, 특정 키 조합이 부가 서비스 요금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통화 내역을 통신사에 확인해보세요.
Q. 발신번호 없는 국제전화가 정상적인 경우도 있나요?
드물지만 가능합니다. 해외에서 급하게 전화를 걸어 번호 표시 설정을 잘못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대부분 다시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내는 게 정상이므로, 발신번호 없는 전화는 일단 의심하는 게 좋습니다.
Q. 발신번호 없는 국제전화를 차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통신사 스팸 차단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스마트폰에서 '알 수 없는 발신자 차단' 기능을 활성화하면 자동으로 차단됩니다. 추가로 KISA 불법스팸대응센터에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Q. 국가 코드만으로 스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나요?
튀니지(+216), 이란(+98), 러시아(+7) 등 상위 스팸 국가의 코드는 기억해두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발신번호가 위조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국가 코드만으로 완전히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발신번호가 이상하거나 표시되지 않으면 일단 무시하세요.
발신번호 없는 국제전화는 99%가 스팸이나 사기다. 남은 1%는 해외에서 급하게 전화를 걸어 번호 표시 설정을 잘못한 경우인데, 이런 경우에도 다시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내는 게 정상이다. "누구지?" 싶어서 되걸기 하는 순간, 요금 폭탄과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에 노출된다. 발신번호가 없는 전화는 무시하고 차단한 뒤, 필요하면 스팸 신고까지 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